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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달산(해발179m)은 현재 국립현충원이 자리 잡고 있는 산을 말한다. 산의 주능선으로 국립현충원 외곽 담장이 둘러있기 때문에 산 북쪽 기슭 전첵 국립현충원이 된다. 특히 이산에는 서울 올레길이라 부르는 생태육교~상도동SH아파트까지 1,2km의 생태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과의 가족 나들이에도 안성맞춤이다.
조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된 70여명중 젊은 육신의 묘역이다.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추모하여, 1691년(숙종 17)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 6)에는 신도비를 세웠다. 서울시는 1955년 그 자리에 육각의 사육신묘비를 세우고 1978년 정화해 사육신공원을 조성하였다.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1394-1462)의 묘와 사당인 지덕사가 있는 이곳에는 사당과 제사당 제기고(祭器庫) 등 3동의 건물이 있고 사당 후면에 묘소가 있다.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조모인 창빈안씨의 묘는 1549년 양주 장흥에서 국립서울현충원 내 현재 위치에 이장되었다. 후궁의 원묘이나 선조 이후 이분의 후손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신도비를 세우고 봉분 뒤에 담을 둘렀으며, 묘갈, 혼유석, 석등, 호석 등 왕릉과 비슷한 석물이 갖추어져 동작능이라 불렀다.
동래정씨 임당공파 묘역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61호로서, 과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61호 임당정공 신도비와, 제 62호 수죽정공 신도비 및 제 63호 제곡정공 신도비의 3개 문화재가 하나로 통합되어 지정되었다.
사당4동에 위치한 이정영의 묘는 묘지 1천여㎡와 신도비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신도비의 규모는 가로 90㎝, 세로 30㎝, 높이 270㎝이며, 재질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이정영의 묘는 17세기말, 18세기초의 분묘형식과 제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묘갈, 상석, 문간석상, 망주석 등 당시 석조양식을 대표할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립현충원내에 있는 이 묘역은 조선 9대왕인 성종(成宗)의 손자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로로 선무종훈(宣武從勳)된 바 있는 부안군(扶安君) 이석수(李碩壽:1524년~1598년)의 분묘와 그 부인인 현부인(縣夫人) 평강채씨(平康蔡氏)의 분묘가 자리한 묘역으로 묘역 내에는 부안군 이석수의 묘와 그 배위 현부인 평강채씨의 묘 외에도 그 손자인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縣夫人) 남원윤씨(南原尹氏)의 묘 등 총 4기의 분묘와 석물 6기가 자리하고 있다.
전통사찰 제92호로 지정된 이 절은 정확한 창건시기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 공민왕때 보인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신라말 도선 스님이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한국전쟁 이후 국립묘지가 들어서면서 호국영령과 명복을 기원하는 국가의 사찰로 지정되어 호국지장사라 개칭했다. 예전 이승만 대통령이 들렀다가 절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묻히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라 알려져 있다.
정종의 증손인 완성군의 묘로 완성군의 부친은 정종의 손자이다. 이 묘지에는 위에서 아래로 4개의 봉분이 있는데,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완성군의 장인 판관 조석현의묘이고 두번째가 완성군, 그 아래는 완성군의 둘째 아들 상산군, 맨밑이 상산군의 아들 억속의 묘이다. 군의 장인·장모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 땅이 장인 조석현의 소유였는데 완성군의 아들 상산군이 아버지 완성군이 죽자 그를 묻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외할버지 되는 조석현을 찾아가 석고대죄까지 해가며 자기의 아버지를 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여 이곳에 묻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사찰 제77호로 조선 태조5년(1396)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으로 서울의 풍수를 바라보니 백호가 달아나려는 형상이어서 이를 막고자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사자의 형상을 띤 국사봉에 사자암을 창건했다. 사자암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제 제200호 불화, 탱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