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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동에 소재한 수산물 전문 도매시장으로 서울에서 거래되는 전체 수산물 중에서 43.9%의 물량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횟감용 활어 전문시장으로도 알려저 있으며 새벽 경매모습은 서울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소매점포에서는 시중보다 20~30%정도 저렴하게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우리나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서울(노량진) ~ 인천(제물포) 간 총 길이 33.2km의 철도로, 1897년 3월22일 착공하여 1899년 9월 18일 개통되었는 데 증기기관차와 함께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교통의 혁명이었다. 이곳에는 시안 故서정주의 시와 함께 1975년 기념비 건립당시 국무총리인 김종필이 휘호한 철도시발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절은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양나은대사가 현 소재지가 아닌 신작로변(일명 절고개)에 관악산에 있는 연주암의 연락소격인 포교당으로 개창한 것으로 이후 1946년 극락정사로 이름하였다. 불타의 자비사상에 입각한 자리이타(自利利他), 인천인과(人天因果), 무상무아(無常無我)의 진면목을 찾고 호국불교의 이념을 구현하여 우리 문화와 우리의 얼을 깊이 심겠다는 태고종의 도량이다. 대웅전과 구법당 외벽의 탱화가 그려있고 일요일마다 어린이 법회와 학생법회가 열린다.
인 미륵전 암반 위에 둥근 모자를 얹은 큰 석조 미륵불이 안치되고 경주 옥돌로 조상한 약사보살이 미륵암의 자랑이었으나 도난당해 모사품이 대치되어 있다. 이 미륵불은 조선 성종 때 제주 고씨 문중의 이조참판 겸 의금부사를 역임한 고한형을 장이곳에 장사하려고 광중을 파던 중 금불암이 발견되어 장지를 옮겼다는 제주고씨 대동보의 내용과 조선말 포목장수 단씨가 미륵불을 꿈에 보고 발견하여 암자를 짓고 모셨다는 전설로 미루어 고찰인 금불암(금불사)의 미륵불로 추정된다
약수암은 국사봉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강적골이라고 하였다.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묘소가 있는 일대로서, 양녕대군의 시호가 강적공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철분이 많아 물맛이 좋고 몸에 좋다는 약수가 있었는데 이 약수터 주변 땅에 30여년전 절을 짓고 약수가 있는 절이라하여 약수암이라 하였다
숭실대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숭실대 출신의 장로교목사이자 고고학자였던 김양선 교수와 그 가족의 노력에 의해 설립되었다. 1948년 4월 서울 남산에 설립되어 운영되던 것이 전쟁으로 휴관되었다가 개관과 폐관을 거듭하다가 1967년 숭실대 개교70주년을 맞아 부속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전체면적이 420.550㎡에 이르는 대규모 공원으로 원래 이곳은 1985년까지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곳으로, 학교가 이전하고 공원이 조성되면서 공군을 기념하기 위해 보라매공원이라고 명명되었다.
노량진은 지금의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사이에 있던 나루터로 수양버들이 울창하여 노들나루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시흥, 수원방면을 걸쳐 충청, 전라를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에 있어 각종 물품과 사람들의 집합장소로 유명했다. 현재 1989년 서울시에서 세운 ’노량진나루터 표석’이 있다.
수목이 우거지고 까치가 많아 까치고개라 불렸던 곳으로부터 이름이 유래했다. 2005년 6월 아치형 생태육교가 세워지면서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등반이 가능해졌다. 이 생태로 주변에는 자생수종 및 먹이식물인 소나무 등 12종 4,200여 그루의 나무를 비롯해 생태시설물 8종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기자인 최은희씨가 1967년 4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일제강점기 3ㆍ1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을 기리는 사업의 당위성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생긴 공원으로, 산책로, 청소년독서실, 경로당, 체육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