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일대는 조선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수원 묘소(융건릉)에 가는 능행길에 잠시 쉬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정조는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말을 듣고 맹수를 쫓기 위해 두 개의 정승을 세우라고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 일대에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장승 앞에서 동제(洞祭)를 지내며 마을의 안전을 기원했다 합니다.
1991년 장승배기역 6번 출구 부근에 장승 두 개가 다시 세워졌다. 매년 10월 24일에 장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장승배기 장승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하다가 2024해에 4년만에 재개되었습니다. 장승제는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행사는 노량진2동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합니다.
장승배기의 장승은 왕명으로 세워진 유일한 장승으로, 대방장승이라고도 하며 전국 장승의 우두머리로 대접받습니다.
장승배기라는 지명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서울에도 강서구 염창동에도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존재했으며, 서초구 염곡동에 장승꽂이, 송파구 삼전동에 장승골이라는 지명이 있었습니다. 장승은 20세기 전반까지 마을이나 사찰입구의 도로표지(路標)의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시대 연구에 의하면 흑석동, 동소문 밖에도 장승이 있었습니다. ‘장승배기’라는 명칭은 장승이 서 있던 고갯길을 지칭하는 보통명사형 지명이었는데 노량진 장승이 갖는 상징성으로 지금까지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권혁희, 2014).
정조가 능행길에 장승을 세우라고 명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해동지도(海東地圖)라는 고지도엔 노량진 장승배기길을 ‘과천계장생현로(果川界長牲峴路)’라고 표기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영조대에 제작되었는데, 정조 이전에 장승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정조가 만들라고 했다는 구전은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동작구청의 행정편의적 발상은 전근대적 유물로 버려야 할 대상
동작구청은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전근대적 사고의 발상을 버리지 않으면 구민들의 지지를 잃게 될 것. 동작구청 어느 부서의 발상인지 즉시 취소하고 새롭게 구민들의 의견을 묻을 것.
동작구민들의 주장
1안. 장승배기역을 그대로 사용할 것
2안. 장승배기역(동작구청역)
저의 주장
1안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주민 일부는 동작구청역으로 바뀌면 그 일대의 부동산가치가 높아진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사회일원은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유기적관계가 유지되어야 더 높은 품격을 높혀갈 수 있습니다. 부동산가치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여 높은 관계가 자연히 성숙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견해를 기다립니다.
이 글을 읽은 신 분들께서 동작구청 구청장에 바란다에 기고하는 충언의 글을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