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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기나루(동작진, 銅雀津)

동작진은 문헌상 천현 북쪽 18리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동작도(銅雀渡)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재기 고개 이름을 따서 동재기나루터로 부르기도 했다. 지금 그곳에는 '동재기 나루터'라는 표석이 서 있다. 과거에는 고운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었을 그곳에서 옛날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동재기 나루터는 동재기 고개에서 반포아파트 단지 입구 사이, 오늘날 지하철 4호선 동작역 아래 이수천 입구로 추정된다. 이 나루는 조선시대 서울에서 과천, 수원, 평택을 거쳐 호남으로 내려가든가, 또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였다.

동재기는 흑석동에서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 일대에 검붉은 구리빛[銅] 돌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수심이 깊어 나루 위쪽에는 모노리탄(毛老里灘)이란 여울이 있었고, 그 앞에는 기도(碁島)란 작은 섬이 있었다. 이 진은 인근 노량진 관할하에 있었는데 호남·호서지방의 과객과 사대부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으나 사선 몇 척만이 운용되어 교통이 불편하였다.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을 계기로 나루의 관리를 철저히 하고자 변장이 파견되었으며 영조 22년(1746) 노량진의 나룻배 3척을 이관 받음으로써 나루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동재기나루는 근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한강인도교의 건설로 기능이 약화되었으며, 동작대교가 건설되면서 옛 지명을 재현하게 되었다.

옛 시조에 나타난 동재기나루

해 질 무렵 동작나루를 건너며

정 약 용

해 저무는 동작나루 물결만 출렁이네
멀어지는 저 남산은 그리운 옛 동산
드리운 수양버들 비에 더욱 희고
연기 솟는 성안은 황혼에 젖어 있네
궁궐에서 다시 부르심 기다리는 것만 상책이 아니로다
성은으로 이 몸을 나루터에 보내졌노라
서학은 들었지만 참 뜻을 모르는데
이 길은 머나먼 귀양길인가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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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19년 01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