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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민간신앙

본동 용궁당 (龍宮堂)

  • 소재지 : 노량진 본동 수원지 옆의 산 정상에 있고, 주위에는 인가가 들어서 있다.
  • 소개

    이 용궁당은 1697년(숙종 23)에 박태보(朴泰輔)를 위하여 세운 노강서원(鷺江書院)이었으나 서원이 철폐되면서 여기에 있던 물건들을 용궁당(龍宮堂)에 옮겨 놓은 것이라 전한다. 신상(神像)은 특별한 표식은 없었고 큰 칼 등이 있었다. 제의(祭儀)는 봄, 가을 곧 음력 3월과 7월에 날을 받아서 두 번 지낸다. 1985년 이전까지만 해도 당제(堂祭)를 지냈다고 한다. 제의 절차는 먼저 제를 지내기 한달 전에 모이을 가져 제관을 선정한다. 제의 과정은 각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지신(地神)에게 제를 올리고 한강으로 나가 강변에서 제를 올린다. 그 다음 대동우물에 와서 제를 지내고 당에 가서 다시 제를 지낸다. 재물로는 주로 통돼지와 떡을 쓴다. 제주(祭主)는 제를 지내기 전 모임에서 정한다. 주로 가장 연장자가 맡게 된다. 제주는 상가집에 가지 말아야 하며,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
    제의에는 노량진 본동 주민이 참여하며, 제의 목적은 강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물에 빠져 죽지 말라고 모신다고 한다.

본동 용궁당2

  • 소재지 : 동작구 본동 300번지 26통 3반 가칠목마을에 있는 신당(현재는 개인신당)이다.
  • 소개

    당의 유래는 조선시대 왕명으로 마 장군할머니(마씨 할머니)가 신용산 새풀이(현 이촌동)에서 당을 이룩한 데서 비롯된다. 옛날에는 한강물이 맑아 나라에서 물을 당나귀로 져다 먹었다. 그래서 한강의 용신을 위해 쌀을 몇 가마씩 고기밥으로 주었다. 그러다가 임금이 명하기를 '당을 이룩하여 용왕님을 모시고 祭를 지내면 그 밥은 사라도 먹고 고기도 주어 좋지 않겠느냐'고 하여 마씨 할머니가 당을 이룩하게 되었다 한다. 정월 14일날 한강에서 방생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제의형식은 옛날에는 고사형식으로 기도만 하였는데 후에 무당들이 와서 굿을 하였다고 한다. 굿은 열두거리를 하며 하루동안 하였다고 한다. 제물은 떡·삼색과일·어물 등을 쓰며 굿을 할 때는 소머리를 쓴다. 떡은 용왕님에게는 백편(백설기), 신장님에게는 팥떡을 쓴다. 용왕님은 영검하여 기도하면 원하는 대로 잘 된다고 한다.

노량진1동 서낭당

  • 소재지 : 노량진 1동 현 노량진경찰서 부근에 있었다.
  • 소개

    신목은 느티나무이다. 이 일대는 아름드리 소나무·느티나무·도토리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는 야산으로 '당산'이라 불러졌다.
    제의는 음력 10월에 거행하는데 서낭당 느티나무에 당줄을 치고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서 자정에 지낸다. 액을 쫓고 온 동네가 잘되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다. 아이들도 이 날만은 자지 않고 촛불에 소지(燒紙)를 올렸다고 한다.

노량진1동 부군당

  • 소재지 : 노량진1동 영본초등학교 앞에 있었다.
  • 소개

    당집은 한 칸 짜리 기와지붕으로 안에는 비각이 있었다.
    1925년(을축년)에 큰 장마가 져서 국제적십자사에서 마련한 비용으로 이촌동 주민들을 산동네 복흥촌으로 집단 이주시켰는데, 원래 미신을 많이 믿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곳에 당을 옮겨 짓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는 제를 지내지 않았다. 비각 안에 신상(神像)은 없고 비각만이 남아 있다. 제의는 祭가 중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봄·가을로 두 차례 지냈다. 그리고 제사 비용은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약간씩 추렴하여 지냈다.

노량진2동 대방(大方)장승

  • 소재지 : 노량진 선창(船艙) 장승배기에 서 있던 장승을 대방장승이라 한다.
  • 소개

    행정구역상으로는 노량진2동에 속하나 장승이 있는 지역이 노량진동과 상도동, 대방동이 접한 지역이라 흔히 상도동 장승배기, 또는 대방장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팔도 장승을 총괄하는 장승의 우두머리를 대방이라 불렀는데, 바로 그 대방장승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것이 연고가 되어 '대방리'라는 지명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현재 장승배기의 장승은 옛날에 장승이 있던 자리에다가 근래에 세운 나무장승으로 남장승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여장승은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는 명문이 쓰여져 있다. 과거에 이 장승도 마을의 수호신 내지 이정표로써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흑석동 산신당

  • 소재지 : 흑석동 국군묘지 담 옆 야산 등성이에 있었다.
  • 소개

    신수(神樹)가 없이 무형의 평지만 있는 형태의 동신당(洞神堂)으로, 주민들은 이곳을 산신당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동신제(洞神祭)를 지냈다.
    이와 같은 평지 형태의 동신당은 원래 이 야산이 신성의 상징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그 산위에서 직접 동신제를 지내던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 그런 산 위의 신수 밑에서 동신제를 지내던 것이 국군 묘지 담장공사를 하며 신수를 베어내서 신수가 없어진 채, 그 담장 옆 신수가 있던 옆에서 그대로 동신제를 지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두 가지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일 것으로 생각된다. 전국적인 동신당의 형태를 보면 신수가 기본적으로 있고 산 위에 있는 산신당의 경우도 대체로 신수가 있기 때문이다.

흑석동 산신제(山神祭)

  • 소재지 : 동작구의 산신제는 흑석동에서 지냈다.
  • 소개

    일제 때만 해도 한강 남쪽 강안(江岸)에서 과천 가도에는 백여 호(戶)의 농가가 있었는데 강기슭의 가파른 언덕 위에 크고 작은 두 그루의 상수리나무, 곧 신수(神樹)가 있었다. 오른쪽의 큰 것은 남신수, 왼쪽의 작은 것은 여신수이다. 그것은 모두 산정에 있는 흑색의 큰 암반을 뚫고 나와 있어서 신수의 강력한 위력을 느끼게 해주고 있어 주민들은 이 암반을 '신암(神巖)'이라 불렀다.
    흑석동 산신제는 드물게도 대낮에 행해지는데 매우 정숙하게 지낸다. 당시 동제는 유례식(儒禮式)인 헌작(獻爵)·고축(告祝)·소지(燒地) 순과 무속식(巫俗式)인 무무(巫舞)·무악(巫樂)·무가(巫歌)의 두 흐름을 볼 수 있으나 공통점은 신의 가호와 축복을 기원하는 데 목적을 둔 점이다. 특히, 유례형의 동제에서는 제의를 마친 뒤 음복연(飮福宴)이 있는데 동민은 한가족이 되어 신이 흠향한 음식이라 하여 일대 향연을 베풀며, 무속형 도당제(都堂祭)에서도 주연을 베풀면서 가무로 산신의 신덕(神德)을 기리는 축제가 이루어졌다.
    마을마다 농악과 무악은 억압된 당시 동작구 주민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으나 일제는 3·1운동과 6·10만세 운동 뒤 군중집회를 두려워한 나머지 단순 전승으로 면면히 이어온 이 동제마저 금지시켜 1936년경에는 서울의 대부분 마을이 중단된 상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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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17년 0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