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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 유래

  • 동작구는 1980년 4월 1일 관악구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시의 17번째 구로 탄생되었다. 그 명칭은 동재기나루에서 유래했으며 유구한 한강과 역사를 함께 했다.
  •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흐르는 한강은 겨레의 젖줄이며 아득한 옛날부터 역사와 문화의 원천이었다. 특히 땅이 비옥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한 한강하류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터전이 되었다. 물산이 풍부한 국토의 중심지로, 중국과의 교통요충지로 민족사의 중심무대가 되어왔다.

동작비석

동작 시대별 변천사

  • 통일신라 이전
    •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백제의 발상지였던 한강하류 지역을 고구려 장수왕이 점령(475)하여 노량진을 경계로 광명시에 이르는 서편에 잉벌노현, 과천 안양시에 이르는 동편에 율목군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통일 후에 잉벌노현은 곡양현, 율목군은 율진군으로 개칭되었는데, ‘곡양’은 곡물이 많이 생산되는 농업지대이고 ‘율진’은 밤 나무지대와 노량진 일대에 도진촌이 조성된 것을 의미한다.
  • 고려시대
    • 곡양현을 금주, 율진군을 과주로 개편한 뒤 현종 9년(1018) 중앙집권화의 일환으로 금주는 안남도호부에, 과주는 광주목에 예속시켰으나 중앙관이 파견되지 않고 지방세력이 다스리는 자치현으로 유지 되었다.
  • 조선시대
    • 조선왕조가 한양에 정도하면서 노들강(한강)을 사이에 둔 동작지역은 삼남지역과 수도를 연결하는 한성의 관문이 되었다. 동재기나루, 노들나루가 개척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진을 중심으로한 사회 경제적 발전은 물론,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숙종 29년(1703) 금위영 소속의 별장이 배치 되기에 이른다.
      행정구역은 지방제도를 정비한 태종 16년(1416)에 금주는 금천현, 과주는 과천현으로 개편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정조 19년(1795) 시흥현으로 안정되었다.
    •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매년 수원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노들나루에 전국의 큰 배를 동원해 주교(舟橋:배다리)를 놓고 군사호위를 받으며 행차하는 국가적 행사가 성대하였는데, 이때 노들나루가 있는 지금 본동에는주교공사를 주관하는 주교사와 왕이 잠시 쉬어가는 용양봉저정이 건립되고 노량진에서 수원에 이르는 도로가 개수되는 등 시흥군 지역은 더욱 중요시되었다.
  • 18세기 후반
    • 18세기 후반에 자유상공업과 유통경제가 진흥됨에 따라 한강을 무대로 한 강상(江商)이 활기를 띠었고 한성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수원에서 한성을 잇는 대로변과 동재기나루터 도진촌이 번창하였다.
      갑오경장 이후 8도제가 23부제로 개편되면서 장승배기를 경계로 인천부 과천군과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고,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에는 지금의 관악구, 영등포구와 함께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36년 경성부 영등포 출장소에 편입되었다.
  • 광복이후
    • 영등포구에 시흥, 김포, 부천군의 일부가 편입되고 1973 년 영등포구에서 관악구가 분리될 때 동작지역은 관악구에 속하게 되고 드디어 1980년 4월 1일 관악구에서 동작구가 분리 탄생되어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자치구로 발전하고 있다.

동작지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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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담당
교육문화과  문화예술팀   김현정 / 02-820-9657
최종업데이트
2017년 07월 24일